전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독일의 대서양 방벽

밀리터리|2018. 7. 4. 07:30


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에 유리해질 무렵에 히틀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까지 실패와 연합국 해군 전력을 차단을 사전에 저지를 하는 것도 독일군에게는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에 연합국이 상륙을 하는 것을 저지를 하기 위해 독일은 거대한 대서양 방벽이라 불리는 방어선을 노르망디에서 시작을 하여 파드 깔레까지 총 3,860km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대서양 방벽을 건설을 시작을 하자 마자 독일도 문제가 발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필요한 히틀러의 간섭과 자원수급문제까지 발생으로 요새를 짓기가 여려워졌습니다. 독일은 서쪽으로는 연합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여야 하고, 동쪽으로는 소련을 점령을 하기 위해 온 갖 노력을 다 하게 됩니다. 독일군과 달리 연합군 병력이 우세합니다.



특히 튼튼한 요새를 지을 때에는 철강 및 콘크리트가 필요한데 자원수급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러한 거대한 방어선을 당장에는 남아있는 물자까지 소모해서 만들 필요까지 없다는 상당수의 고의층 의견으로 공사는 더디어지게 됩니다.



독일이 아프리카 전선에 패배하게 되고, B집단군 사령관이 롬멜 장군으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롬멜 장군은 부정적으로 대서양 방벽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가 있었지만 만일 연합군이 상륙작전에 성공을 하게 된다면 독일이 더 이상 연합군을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방벽 건설에 대한 견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대서양 방벽 건설에 필요한 다양한 물자는 집중적으로 채널 제도에 중장갑을 갖춘 해안포 설치 등 완벽한 방어진지가 되었습니다. 채널 제도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습니다. 채널 제도와 달리 노르망디에는 방벽 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을 받지 못해 요새시설도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방벽을 만들기 전에 이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였습니다.




긴 대서양 방벽을 독일군대가 일일이 수비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였고, 연합군은 프랑스의 다른 곳에 상륙작전을 하더라도 성공을 하여 프랑스를 재탈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영국, 미국 연합군 등, 동쪽으로는 소련 연합군으로 독일의 취약한 부분을 돌파하기에 애초에 거대한 방벽에 완벽한 방어를 하기에는 정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독일은 이미 거대한 요새 보다는 소련침공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성공적으로 노르망디에 상륙을 하자 그 동안 건설을 해왔던 방벽 덕분에 한달 정도 연합군을 저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 방벽 건설에 대한 물자가 풍부하고, 철근과 콘크리트가 부족하지 않았더라면 노르망디까지 방벽 건설을 끝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독일의 최강의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을 한다 하더라도 상륙 실패와 동시에 연합군에 엉첨난 피해가 발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2차대전이 종전이 된 이 후에 대서양 방벽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가 철거공사비용이 정말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인해 철거하는데 정말 부담이 되고 감당을 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대서양 방벽이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이용되어 지고 있는 방벽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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