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이 창설 후 유일한 함정 충무공함

밀리터리|2018. 6. 9. 00:00

한국 해군이 창설 후 유일한 함정 충무공함



1945년 일제에서 드디어 해방을 한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38선으로 분리가 됩니다.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으로 서로 다른 이념이지만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5년 후에 1950년도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한국 해군의 백두산함은 긴급 출항 명령을 받고 떠나게 됩니다. 백두산함 이 전에 독립 후에 유일하게 한국의 영해를 지킬 수 있는 함정은 단 1척 뿐이었습니다.


독립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



1945년에 독립을 한 대한민국은 3년 뒤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됩니다. 이에 대한민국 국군도 창설이 되었지만 해군은 바다를 지킬 수 있는 함정이 1척 정도 있었습니다. 1947년에 2월 2일 건조된 경비정 한 척이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군함입니다. 이 군함은 일본이 패전 후에 버리고 간 배를 대한민국 국군 창설 후 최초의 손원일 제독이 조선해안경비대 기술진을 동원을 하여 1946년 7월 17일에 진수를 하였고, 경비정으로 완성시켰습니다. 경비정이지만 바다를 지킨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는 군함입니다.


최초의 군함 충무공정함


※ 충무공정 함


배수톤수 : 287톤

길이 : 46.6m

폭 : 4.7m

최고속력 : 13노트

무장 : M3 37mm 대전차포


이름이 지정이 되지 않은 경비정에 충무공정으로 명명하였고 감격스러운 태극기를 게양을 하였습니다. 해상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충무공정함은 단순히 우리나라 해상으로 넘어온 일본 어선을 직접 나포를 하거나 밀매선을 단속을 하는 수준의 함정이었습니다. 국군 창설 후에 미해군이 넘겨준 배들도 상륙정, 소해정 등으로 실제 해상 전투에 투입하기에 부족한 함선이었습니다.



함정건조각출위원회



당시의 상황으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기술로 해군 함정을 건조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바다를 지킬 수 있는 전투함의 필요성으로 미국에 지속적인 전투함 지원요청을 하였지만 돌아온 결과로는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1946년 6월 1일에 손원일 제독은 함정 건조 모금운동의 함정건조각출위원회를 구성하게 됩니다.



해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씩 모았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손원일 제독 부인인 홍은혜 여사를 중심으로 조직이 된 해군부인회가 구성이 되어 바자회 운영을 통해 수익금을 함정건조각출위원회 기금에 보태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모금운동이 확산이 되되어 1만 5천 달러를 4개월 만에 마련하였습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해군 발전을 위해 4만 5천달러를 지원을 하였습니다.



함정건조각출위원회에서 그 동안의 그 돈으로 대한민국 바다를 지킬 수 있는 함정구매를 위해 손원일 제독은 미국에 가게 되고 주한미국 대사의 도움으로 10월 17일에 6.25 첫 대한해협 승전보를 울린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PC-701 백두산함, PC-702 금강산함, PC-703 삼각산함, PC-704 지리산함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구입을 한 4척의 전투함으로 우리나라 영해를 지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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